보험사 "소비자 니즈 없고 수익도 없는데.." 뒷짐

[보험매일=주가영 기자] 자녀가 사망시 친부모라도 보험금을 수령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미성년자의 보험금 수령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세월호 사고로 인해 자녀를 잃은 친부모가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는데도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몇 십 년 만에 나타나는가 하면 반대로 부모가 사망해 미성년자가 거액의 보험금을 받는 경우가 생기면서 법정대리인이 이를 편취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어서다.

◇현행 민법상 미성년자는 보험금 수령 ‘안돼’

현행 민법은 미성년자에게 친권자가 없을 때 미성년자를 보호하고 재산을 관리하도록 후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전에는 가까운 친족 순으로 미성년자 후견인을 지정했지만, 지난해 7월 개정된 민법에서는 부모의 유언이나 청구에 의해 가정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는데 대개 가까운 친척이 이를 맡는다.

하지만 후견인이 자신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피후견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미성년 후견은 법원이 후견인의 권한을 제한할 규정 근거가 없어 이를 제재하거나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형사소송법에도 직계 혈족이거나 같이 사는 친족은 고소 또는 고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친족상도례’ 조항이 있어 만일 같이 사는 친척 후견인이 공갈, 횡령, 절도 등의 죄를 지으면 대부분 불기소 결정이 난다.

이로 인해 후견인이 친족상도례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

민법 제932조에 명시된 미성년자의 후견인의 순위는 부모가 유언으로 후견인을 지정하지 않았을 경우, 미성년자의 직계혈족, 3촌 이내의 방계혈족의 순위로 후견인이 된다.

직계혈족 또는 방계혈족이 여러 명일 시에는 최근친을 선순위로 하고, 동순위자가 수인일 경우에는 연장자가 선순위자가 된다.

또한 일명 ‘최진실법’이라 불렸던 민법 제909조(2조 제2항)에선 자녀의 복리를 위해 친권자동부활제를 개선했다. 친권에는 자녀들 명의의 재산관리권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배우 최진실 씨의 사망 후 자녀들에 대한 전남편 고 조성민 씨의 친권 회복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서 만들어진 법이다.

민법에 의하면 ‘생존하는 부 또는 모, 미성년자, 미성년자의 친척은 그 사실을 안 날로 부터 1개월, 사망한 날로부터 6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생존하는 부 또는 모를 친권자로 지정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혼한 부부 중 친권자로 지정된 일방이 사망한 경우 생존한 부모의 친권이 자동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법원의 판단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생존배우자에세 친권이 부활되지 않으므로 미성년자를 대리해 법률행위를 할 경우 가정법원으로부터 친권자 지정을 새로 받아야만 가능하다.

◇美 생보사 구조화된 지급방식 사용

미국 생명보험사의 경우 인적사고 발생 시 보상금 전액을 일시금으로 받는 대신 적어도 일부를 정기금(연금) 형태로 보상받는 방법인 구조화된 지급방식(structured settlement)을 사용하고 있다.

구조화된 지급방식이란 가해자나 그들의 손해보험회사가 보상금을 일시금으로 직접 지급하는 대신 생보사에 배상책임을 이전해 연금형태로 피해자에게 보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연생유족연금의 경우 연금수급권자가 사망하면 남은 연금은 수익자의 사망 시까지 지급되며, 지급규모는 원 지급액의 일정비율로 설정할 수 있다. 확정형연금은 계약기간 내 연금수급권자가 사망하면 남은 연금은 지정수익자가 연금 혹은 일시금의 형태로 받을 수 있으며, 보증기간부연금은 보증기간 내 연금수급권자 사망 시 잔여기간 내 연금을 지정수익자가 연금 혹은 일시금의 형태로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유족이 미성년자라도 가입자 사망이후 일정기간 동안 지급보증을 통해 상속인을 보호할 수 있다.

◇국내 생보사 교보생명 유일

국내 생보사 중에는 교보생명의 양육연금지급서비스가 유일하다.

이 서비스는 보험금 수익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 사망보험금을 일시금으로 지급하지 않고 성년이 될 때까지 분할 지급하는 서비스로 종신, 정기, CI보험 가입고객에게 제공된다.

고객이 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사전에 예약한 대로 지정한 자녀연령까지 사망보험금의 50~100%를 매년 일정하게 양육연금 형태로 지급한다.(공시이율 적용 분할지급)

또한 이 양육연금은 유자녀가 성년(20세 이상)이 될 때까지 중도해지가 불가능해 법정대리인이 일시금으로 수령할 수 없다.

한화생명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지만 모든 보험상품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특약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한화생명의 The따뜻한스마트변액통합보험은 양육자금전환특약을 탑재해 자녀가 성인(만19세)이 될 때까지, 법정대리인이 사망보험금의 50% 이상 일시 수령하는 것을 제한한다.

나머지 금액은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 매월 양육자금 형태로 수령하면 된다.

또 유언대용신탁은 미성년자가 상속인일 경우 성년이 될 때까지는 수익만 지급하고, 성년이 된 이후 상속재산을 지급할 수 있게 하는 등 상속인의 상황에 따라 상속재산의 지급 시기도 다양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법정대리인의 모럴헤저드 막을 방법 없어

법정대리인은 대게 친족이 설정되는데 일부 대리인이 종종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 마음대로 써버리는 경우가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상 사고 등으로 부모가 모두 사망하게 되거나 편부모인 경우 법정대리인의 모럴헤저드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거액의 보험금을 상속받게 된 어린 조카를 입양한 뒤 보험금 등 유산을 가로채고 상습적으로 학대해온 삼촌과 숙모가 구속된 사례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외와는 달리 법정대리인의 모럴헤저드를 막기 위한 대책이 미흡하다”며 “부모 사망시 가장 쉽게 편취당할 수 있는 것이 보험금이지만 미성년자는 보험가입여부 등 확인도 어렵고 잘 모르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보험금 수령권을 보호할 수 있는 서비스나 상품을 가입하는 것만이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친척들에 대한 불신이 전제된 것이기 때문에 법적 대리인인 친족들은 그들 입장에선 정당한 권리인데 이를 침해한다고 생각해 분쟁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도적 장치 및 관련 상품 개발돼야

미성년자의 보험금 수령권을 보호하기 위해선 제도적 장치와 관련 상품 개발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생보사들이 이러한 모럴해저드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소비자의 니즈가 약하고 법으로 명명돼 있는 법정대리인의 보험금 편취까지 보험사가 책임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소비자가 가입초기 본인의 사망, 보험금 편취 등 그런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가입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지 않다”며 “보험사 입장에선 고객의 니즈가 없고 수익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세월호 보상 업무의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미성년자의 경우 보상금을 한꺼번에 주지 않고 정기금 방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행법으로는 근거 규정이 없어 특별법에 반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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