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상품을 한 자리에서 상담·가입할 수 있는 ‘복합점포’가 일단 은행과 증권사 영업점만에서 실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보험사는 여기에서 빠졌다. 은행 계열의 보험사가 복합점포에서 자사 상품 위주로 영업을 하면 비(非)은행계 보험사가 손해를 보게 될 것이란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보도에 따르면 금융감독위원회는 은행과 증권사만을 대상으로 한 복합점포를 먼저 도입하기로 하고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보험사를 포함시키기로 한 모양이다. 금융위가 밝히고 있는 '공론화 과정'이라는 것은 당연히 보험사들의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애매한 것은 이 '공론화 과정'이다.

당초에 금융위가 복합점포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투자활성화'와 '금융규제 개혁'의 하나였다. 금융업권간의 '유리벽'을 제거해 투자자가 보다 편리하게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한 점포에서 예·적금과 펀드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보험에 가입하고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이른바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정작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복합점포는 '절름발이 복합점포'의 모습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바로 '공론화 과정' 때문이다. 금융위가 복합점포를 선보이려는데 갑자기 비은행계 보험사라는 걸림돌이 나타난 것이다. 비은행계 보험사는 은행을 계열사로 끼지 않은, 그러니까 삼성생명이나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전업계 생보사를 말한다.

이들 비은행계 보험사들은 "복합점포 내 유리벽이 없어지면 은행계열 보험사가 한 자리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영업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럴 경우 보험사 직원이 사실상 은행 기반의 복합점포에서 자사 상품만 집중적으로 팔고 은행 점포에 속한 직원 방카슈랑스 상품은 거의 취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 마디로 방카슈랑스 '25%룰'이 무력화된다는 논리다.

비은행계 보험사들이 이렇게 나오자 보험연구원도 말을 보탰다. 보험연구원은 "금융위의 복합점포 활성화 방안은 금융 산업의 경쟁, 소비자보호 및 영업행위 리스크 등을 감안해 신중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에게 원스톱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돼 불완전 판매가 늘어나고 금융안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황한 것은 금융위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보험사를 포함한 은행, 증권사가 한 자리에서 금융상품을 취급하게 되어야 맞는데 비은행계 보험사가 발끈하고 나서니, 부랴부랴 '공론화'를 내세워 이들 보험사의 의견 수렴과정을 거친 다음 단계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하자는 쪽으로 돌아서는 형국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은 '논의할 사항'이 많아 복합점포에서 일단 제외하기로 했다"며 "내년 4월에 은행과 증권사만으로 구성된 복합점포를 출범하고 보험은 차차 생각할 계획"이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자리에서 신제윤 위원장은 한 술 더 떴다. 김을동 의원(새누리당)이 "43만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들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이기 때문에 복합점포로 인한 일자리는 문제는 신중히 접근해야한다"고 지적하자 답변에 나선 신 위원장은 "복합점포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은 금융소비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보험의 경우 꼭 복합점포를 취급하지 않아도 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동안 '투자활성화'니 '금융규제 개혁'니 하면서 전 금융권이 참여하는 복합점포를 추진한다고 기껏 공언해 놓고선 국회의원 말 한 마디에 백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름발이 복합점포'를 만들겠다니 금융당국의 수장으로서, 시쳇말로 '모양 빠지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보험사가 빠지는 '복합점포'에서 소비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투자 활성화와 금융 소비자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명분이 일부 보험사의 '밥 그릇'에 밀려난 것이다. 거기에 금융당국 마저 이 놀음에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험 상품은 보험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민후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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