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보완장치 필요" vs "시장 발전하면 문제 적어"

[보험매일=이정애 기자]  정부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의 총 위험자산 보유한도를 현행 40%에서 70%로 늘리는 등 연금자산 운용규제를 완화키로 하면서 손실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개별 가입자 입장에서 최대 노후자금인 퇴직연금에서 손실이 발생한다면 손에 쥐어지는 연금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자녀 학자금, 결혼자금, 가계자금 등이 부족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규제로 적극적인 투자가 어려운 탓에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아 노후보장대책으로 한계가 있고 자본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지만 규제완화책만큼 보완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현재 470만 근로자가 가입한 퇴직연금 자산 87조5천억원 중 92.6%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다. 원리금 보장형은 손실은 나지 않지만, 저금리 기조에서는 분기 수익률이 1%도 안 될 정도로 낮다.

정부는 DB형과 DC형의 위험자산 운용규제를 없애고 개별자산의 투자한도를 없앰으로써 운용수익을 높이는데 정책방향을 맞췄다.

문제는 국내 자산운용사의 운용 능력이다.

금융사의 자산운용 능력은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 이들이 수수료 수익을 노리고 위험 자산 투자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거나, 투자 지식이 부족한 근로자가 충분한 이해 없이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선택해 손해를 보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은 "규제 완화는 기본적으로 맞는 방향이지만, 보완장치 없이 규제를 풀었다가는 퇴직연금의 첫 번째 목표인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이 위협받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퇴직연금의 자산운용규제가 한국보다 자유로운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수탁기관이 무리한 투자를 벌이다가 근로자 노후자금에 큰 손실을 입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례도 왕왕 있다.

2012년에 일본에서는 대형 기업연금 운용회사인 AIJ투자자문사가 최대 24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는 허위 광고로 2천억엔(약 2조8천억원)에 이르는 연금 자금을 끌어들이고서 부실하게 운용해 대부분을 날리는 사태가 있었다.

당시 이 운용사에는 84개 기업연금 기금이 최저 3.6%에서 최고 56.9%까지 보유자산 운용을 맡긴 상태였으며, 결국 88만 명에 이르는 연금 가입 근로자가 연금을 일부 받지 못하는 '날벼락'을 맞았다.

이런 위험을 막으려면 규제를 완화하기 전에 연금 위험 감독 체계, 수탁자 책임 강화 방안, 수급권 보호 장치 등 보완책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류 실장은 "규제를 풀어주더라도 수탁자가 이익 추구보다는 신의 성실 원칙에 따라 상품을 권유하도록 책임 관련 규정을 확실히 마련하고, 손실이 나더라도 수급권을 보호할 수 있는 보험성 장치를 먼저 만들어둬야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산운용규제를 완화하면 결국에는 퇴직연금 제도와 자본시장이 함께 발전해 오히려 근로자에게 이득이 될 가능성이 크며, 손실 위험 방지 장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마련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성주호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지금과 같은 자산운용체제에서는 퇴직연금이 은행 예금과 같은 안정적인 투자에만 몰려 근로자와 자본시장이 모두 손해를 본다"며 "발전 가능성이 많은 만큼 규제를 적절히 풀면 수익률이 높아지고 자본시장이 활성화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산운용규제가 완화되고 퇴직연금 제도가 활성화돼 소비자들이 많이 들어오면 금융권도 최소 수익률을 보장하는 등 여러 방식의 상품을 발전시켜 자연스러운 위험 방지 장치가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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