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인상만으로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런 언질도,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도 자꾸만 오금이 저리는 사람이 있다. 얼굴에 귀티가 철철 흐른다거나, 사람을 날카롭게 꿰뚫어 볼 것 같은 눈을 지녔다던가, 지적 소양이 넘쳐보인다던가, 뭐 이런 부류의 사람이 그렇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냥 왠지 만만해 보이거나, 쉬워 보이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유행가가 뜬 적이 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는데 그 인기 비결이 노래도 노래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좋아서’ 인기를 누렸다는 것이다. 인상이 ‘만만해서’, 춤을 추는 모습이 어딘지 ‘허술해서’, 그래서 사람들은 ‘최소한 나는 너보다는 낫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 역시 통계 데이터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카더라’는 이야기다.

보험업계는 삼성을 어떤 모습으로 바라볼까. ‘세상은 요지경’의 가수급으로? 동종업계에서 장사하는 그저 그런 파트너로? 아니면 오금이 저리는 경외의 대상으로?

요즘 보험업계에 느닷없는 구조조정 광풍이 불고 있다. 광풍 가운데서도 허리케인급인 인력 감축이다. 삼성생명은 최근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일부 직원을 다른 계열사로 재배치했다. 구체적인 인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체 임직원 6천700여명 중 1천여명 정도가 자리를 떠났거나 떠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인력이동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생보업계의 구조조정이 줄을 잇고 있다. 한화생명이 먼저 반응했다. 이 회사는 이달 초 인사에서 직원 300여명을 전직지원 대상자로 선정, 내보냈다. 이 숫자는 전체 정규직 직원 4천610명 중 약 7%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어 교보생명이 ‘구조개선’에 나섰다. 교보생명은 조금 세다. 오는 7월 전체 직원 4천700명의 최대 15%가량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추진할 예정이란다. 2002년 판매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1천여 명의 인력을 감축한 후 12년 만이다.

잇따른 구조조정의 명분은 역시 ‘인력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다. 저금리․저성장 장기화 등으로 업황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취지인 모양이다. 한마디로 미리 다이어트 하겠다, 뭐 그런 거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때 삼성은 ‘신경영’이라는 명분으로 ‘혁신’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만 빼고 다 바꾼다”는 모토로 진행된 이 ‘혁신’은 정말이지 이거저거 다 바꿨다. 그 중에 ‘백미’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이른바 ‘7․4제’였다. 가히 혁명에 가까운 조치였다.

‘7․4제’는 회장실에서 직접 챙기기도 했다. 회장실은 오후 4시 이후에 사무실에 남아있는 인력을 가려내 고과에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험업계의 반응이다. 삼성이 ‘7․4제’를 밀어 붙이자 보험업계가 하나둘, 나중에는 삼성 경영이 바이블이나 되는 냥 전 보험사가 졸졸, 이 ‘7․4제’를 채택했다. 당시 업계 취재를 맡고 있던 필자 역시 이 시간에 맞추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본사는 그런 데로 굴러갔지만 영업점이 문제였다. 오전은 그렇다 치고 오후 4시에 점포 문을 닫아버리니 고객의 원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저런 이유로 흐지부지, 갈팡질팡하다 몇 년이 채 못가 ‘7․4제’는 유아무야 보험업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요즘 삼성생명의 구조조정을 두고 말들이 많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구조조정이 그들이 명분으로 내세운 ‘저금리․저성장 장기화 등 업황 불투명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대응이지만, 그 궁극에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악화에 미리 대비한 것이 아니었냐는 관측이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습게 된 건 지금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보험사들이다. 삼성생명은 명분을 내세워 그들의 실속을 채우고 있는데 속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서둘러 구조조정을 추진한 보험사들은…, 글쎄다. 한껏 ‘리딩 컴퍼니’라 치켜세우고 그들의 경영을 ‘벤치마킹’으로 포장해 ‘졸졸 따라왔던’ 보험사들이 조금은 허탈해 질 수도 있겠다. 물론 삼성생명이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시쳇말로 ‘모냥 빠지는 일’이다.

인력 구조조정은 경영합리화 조치 가운데서도 가장 후순위다. 말 그대로 경영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마지막 단계로 내놓아야할 카드가 인력 감축이다. 그런데 아직껏 멀쩡한 회사가 앞으로의 경영환경이 나빠질 것이란 예측만으로 미리 사람부터 자르겠다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그것도 남의 회사가 그렇게 한다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삼성은 정말 보험업계의 경외의 대상이다.

이민후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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