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장에서 성인(聖人)을 찾아내다

 

태갑의 아들인 옥정(沃丁)임금 때 이윤이 죽자 사람들은 후히 장사를 지냈다. 제왕세기에 보면 이윤은 100세까지 살았다 한다. 이윤의 아들 이척(李陟)은 그로부터 4대 이후의 왕인 태무제(太武帝)때 재상이 되었다. 이 무렵 은의 기강은 또 다시 약화되고 있었다.

어느날 수도 박(亳)에서 뽕나무와 닥나무가 함께 자라나더니 하룻밤 사이에 한아름 넘게 자라났다. 불길하게 여긴 태무제가 이척에게 물으니 이척은 “요사스러움도 덕행을 이기지는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임금께서 행하시는 정치에 잘못은 없었는지요. 왕께서는 덕행의 수양에 힘쓰십시오.”하고 대답했다. 왕이 그 말을 따르자 불길한 뽕나무가 말라죽었다. 태무제는 슬기로운 이척을 극진히 따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전국의 제후들이 자발적으로 복종하여 세상이 태평해졌으므로 태무제를 중종(中宗)이라 칭하게 되었다.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은 대체로 왕권이 불안할 때였다. 적자계승이 무난히 이루어질 때는 큰 혼란이 없지만, 형제 승계와 같이 뚜렷한 서열의 원칙이 서있지 않을 때는 권력의 향배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권력질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다. 이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안요인인 반면 권력을 쥐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일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을 지키려는 세력과 얻으려는 세력들 사이에 갈등과 긴장은 끊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태무제는 아들 셋을 두고 있었는데, 아들 세 사람이 차례로 왕위에 올랐다. 첫 아들 중정(中丁)이 즉위 20년만에 죽자 그의 아우 외임(外任)이 왕이 되었고, 외임이 14년 만에 죽자 아우 하단갑(河亶甲)이 왕이 되었다. 중정제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못하여 왕위 계승권에 혼란이 시작되었으므로, 이후로 제후와 대신들 사이에 왕권을 둘러싼 세력다툼과 갈등이 벌어졌다. 여러 대에 걸쳐 왕위가 계속 아들 또는 형제에게로 돌아가고 왕마다 수도를 옮겨 짧은 기간에 다섯 번이나 수도가 바뀌었다. 왕의 재위 기간도 짧아져 심지어 4-5년에 불과하리만치 자주 바뀌게 되니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제후들은 조회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 이같은 혼란이 거의 1백년, 9명의 왕이 바뀔 때까지 계속되었다.

19대 왕 반경(盤庚)이 옛 법도를 따라 법과 제도를 바로잡아 나라가 안정되는 듯하였으나, 왕위가 다시 형제들에게로 이어지면서 나라는 이내 쇠락하였다. 36년의 혼란기가 지나가고 22대 무정(武丁)이 왕이 되었다. 왕은 기울어진 국운을 되살리려 했으나 자신을 보좌할 인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3년 동안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나라의 기풍을 관찰하며 사람을 찾던 무정제가 어느 날 꿈에 자신을 도와줄 성인을 만났다. 그 날부터 주변 대신과 관리들 중에서 꿈에 만난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왕이 말한 인상과 닮은 사람이 노역장에서 발견되었다. 그 사람은 무슨 일로 벌을 받고 노예가 되어 길 닦는 강제노역에 끌려가 일하던 중이었다. 무정제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았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과연 현자며 성인이었다. 이에 그의 이름을 부열(傅說)이라 하고 등용하여 재상으로 삼으니 비로소 훌륭한 정치를 펼 수 있었다. 이로써 은의 국운은 다시 흥하게 되었다.

무정제가 선조 탕왕에게 제사를 올리자 꿩이 날아와 솥(가문의 상징을 나타내는 정(鼎)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왕가의 솥이므로 왕권이 상징이다)에 앉아 울고 갔다. 그러자 왕자 조기(祖己)가 말했다. “무릇 하늘이 인간을 감찰하는 데든 그들의 도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늘이 내려준 수명에 길고 짧음은 있을망정, 결코 하늘이 인간을 일찍 죽게 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요절한다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의 행동 때문에 수명이 단축되는 것일 뿐입니다(非天夭民 中絕其命).” ★ (丁明)

- 이야기 Plus
어떤 왕은 흥성하던 나라를 쇠망의 늪에 빠트리고 어떤 왕은 어려워진 나라를 구제한다. 이것은 현대의 공화국이나 일반 기업 또는 조직의 리더들에게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가난한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국민의 기(氣)를 살린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한참 흥성하는 국가경제를 국가부도의 위기로 끌고 들어가는 지도자도 있다. 현명하고 침착한 리더를 만나는 일과 어설프고 교만한 리더를 만나는 일은, 종이 한 장 차이처럼 가벼운 선택의 차이로 뒤바뀔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나라와 백성이 입는 복(福)과 화(禍)의 차이는 태산과 바다처럼 달라진다.

왕이 찾는 성인이 노역장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무정 임금이 즉위하기까지 선대의 왕들이 다스리던 36년 동안 세상의 질서가 얼마나 어지러워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거꾸로 된 세상이 되면, 나라의 요직에는 말만 번드르르한 위선자들이나 권력자의 비위를 잘 맞추는 간신들만 남아 야금야금 나라를 좀먹게 된다. 현명한 인재들은 초야에 묻히고, 양심적인 선비들은 교도소나 강제노역장에서 무고한 형을 치르고 있지 않으면 생계를 잇기 위해 막노동판에서 귀중한 사상을 허비하고 있기 쉽다.

리더가 어떤 사람을 중용하는가는 지혜로운 사람과 간사한 사람을 분별하는 안목에 달려 있다. 인재는 인재가 알아본다고 했던가. 애당초 어리석고 경박한 인물이 리더가 된다면 그 순간부터 집단은 통째로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이 거꾸로 되면, 요직에는 말만 번드르르한 위선자들과 간신들만 남아 나라를 야금야금 좀먹게 된다. 현명한 인재들은 초야에 묻히고, 양심적인 선비들은 교도소나 강제노역장에서 찾을 수 있다.

非天夭民 中絕其命 비천요민 중절기명
하늘이 사람을 일찍 죽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사람이 스스로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수명이 단축되는 것이다. (殷本紀, 書經)

정명(丁明) 시인 상임논설위원(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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