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 없이 성공하는 군주는 없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군주들이 명멸하였지만, 천하를 휘어잡는 왕자(王者)의 뒤에는 반드시 그를 낳은 킹메이커가 있기 마련이다. 홀로 잘 나서 혼자 힘으로 왕이 되고 그 자리를 무사히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습왕조에서는 특별한 조력자 없이도 왕이 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자기 홀로의 길을 고집해서는 왕 노릇 제대로 할 수 없다.

주(周)를 일으킨 무왕은 아버지 문왕의 후광과 주공 단(周公 旦), 그리고 강태공이라는 현자의 조력이 있었기에 새 나라를 세울 수 있었으며, 진시황은 여불위의 도움으로 천하를 통일했다.

한(漢) 고조 유방(劉邦) 역시 수족 같은 장량 소하 한신 등이 있었기에 어지러운 천하를 장악할 수 있었다.

유방과 패권을 다툰 항우(項羽)는 그 반대의 경우다. 스스로 노래했듯 그 힘과 기운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함)를 자랑했다.

시골 땅 초나라에서 궐기한지 3년 만에 중원의 영웅호걸들을 모두 굴복시키고 진(秦)을 정복하여 진시황이 쌓은 아방궁을 불태워버린 뒤 패왕(覇王)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잔혹한 점령자였던 항우에게는 왕업(王業)을 함께 지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곧 향수(鄕愁)에 빠진 항우는 정복한 땅을 부하 장수들에게 나누어주고 초나라로 돌아갔는데, 그로부터 중원은 다시 분열되었고, 그 자신도 한(漢) 유방에게 쫓기어 해하라는 물가에서 자결하고 만다.

군사를 일으켜 초패왕이 되었다가 자결할 때까지 기간이 겨우 8년이었다. 죽을 때 곁에 남은 사람은 애첩 한 사람 뿐이었다. 장수로서의 재능으로는 중국 사상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영웅이었지만, 곁을 지켜주는 사람 없이는 온전히 천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타락한 하(夏) 왕조를 무너뜨리고 은(殷) 나라를 세운 성탕(成湯= 무왕)임금에게도 주(周)의 강태공이나 한(漢)의 장량 같은 신하가 있었으니 바로 이윤(伊尹)이다. 이윤은 혁명 후에 여러 정책을 입안하고 책을 지어 왕실의 기초를 놓았다. 탕이 천자가 될 수 있도록 제후들을 포섭한 것도,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새 통치세력을 완성한 것도 이윤이었다.

탕이 서거한 후 태자 태정(太丁)이 곧 세상을 떠나자 그 아우 외병(外丙)이 즉위했는데, 외병제 또한 3년만에 죽어 동생 중임(中壬)이 뒤를 이었다. 은나라 초기에 왕권의 승계가 순조롭지 않았던 것은 태자 태정의 이른 죽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중임 또한 4년이라는 짧은 기간 왕위에 있다가 붕어하였다.

이에 이윤은 태정의 아들 태갑(太甲)으로 뒤를 잇게 하였으니 이제야 비로소 왕권이 안정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한 차례 홍역을 치러야 했다. 건국 군주 탕의 장손이면서도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7년 동안 두 삼촌들을 왕으로 모시며 홀로 자라난 태갑제는 제대로 정치를 할 줄 몰랐다. 할아버지의 법을 어기고 멋대로 행동하여 국사를 혼란케 하며 젊은 기분에 놀기를 즐기니 결국 사회의 기강이 문란해졌다.

스승인 이윤이 나서서 여러 차례 꾸짖어도 왕이 말을 듣지 않자 마침내 이윤은 중신들의 뜻을 모아 태갑제를 즉위 3년 만에 동궁(桐宮)으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국정 전면에 복귀하여 3년 동안 섭정을 하면서 제후들의 조회를 받았다.

태갑제가 3년 동안 동궁에 머물며 과오를 뉘우치자 이윤은 그제야 왕을 복권시켜 궁으로 모시고 물러났다. ★ (丁明)

- 이야기 Plus
백성과 제후들의 신망을 받는 중신 한 사람의 힘은 가히 왕을 만들기도 하고 물러나게도 하니 어느 왕도 홀로 왕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은 실로 옳다. 서경 상서(商書)에서 이윤이 태갑을 다시 복권시키면서 주고받은 대화편을 핵심만 추려 읽어보자.

태갑 3년 십이월 초하룻날 이윤이 관과 예복을 가지고 가서 임금을 모시고 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글을 지어 아뢰기를,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서로 바로잡아 주며 살 수가 없으며,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세상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民非后 罔克胥匡以生 后非民 罔以辟四方).

하늘이 나라를 돌보시고 도우셔서 후대 임금으로 하여금 그 덕을 다할 수 있게 하셨으니 실로 만세토록 무한한 축복입니다.”

임금이 손을 이마에 얹고 머리를 땅에 대어 절하면서 말하기를 “이 작은 사람은 덕에 밝지 못하여 스스로 못난 짓을 하였습니다. 욕망을 좆아 법도를 어기고 방종하여 예를 어기어(欲敗度 縱敗禮) 이 몸에 죄를 불러들였습니다.

하늘이 내리시는 재앙은 어길 수가 있으나 스스로 만든 재앙은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天作孽 猶可違 自作孽 不可逭). 전에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어기어 저의 처음을 고치지 못하였으나 바로잡고 구하여 주신 덕에 힘입어 끝까지 잘 다스리도록 힘쓰겠습니다.”

태갑이 선조의 뜻을 따라 선정을 베푸니 정치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모두 평안하게 되었다. 이에 태갑제를 기리어 태종(太宗)이라 했다.
자고로 군왕이라 하면 누구든지 왕의 일을 자기 일처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도운 심복들에 의해 일어날 수 있었고, 그 심복이 흩어지면 권력도 쇠퇴하였다.

성공적인 군주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군주 자신의 재목(材木)도 중요하지만 그를 왕으로 만들고 지켜줄 킹메이커의 구실은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만일 왕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사분오열되어 서로 헐뜯으면 어느 누가 군주가 될 수 있으며, 된다 하더라도 그 힘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정명(丁明) 시인 상임논설위원
peacepress@daum.net

저작권자 © 보험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