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을 희롱하다 비명횡사하다

 나라가 망할 때가 되면 별별 황당무계한 일이 거듭해 일어난다. 이런 일은 대개 왕의 처신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한두 사람의 왕 때문에는 아니지만, 몇 대에 걸쳐 무능한 왕들이 이어지면 기어코 나라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무정제(武丁帝) 이후 아들 조경(祖庚)이 즉위하여 43년 만에 죽었다. 조경제가 죽은 해에 왕의 동생 조갑(祖甲帝)이 왕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은나라는 심각한 망조(亡兆)가 나타났다.

<사기>에는 조갑이 ‘음란한 짓을 일삼아 은 왕조가 다시 쇠퇴하게 되었다’만 기록하고 있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 의하면 그는 33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포학무도해 국운을 기울게 했다고 한다.

조갑의 뒤를 아들 늠신과 경정이 차례로 즉위하였고 그 뒤에 경정제의 아들 무을(武乙)이 이었다. 은나라는 바로 무을제와 그 증손 신(辛), 즉 주왕(紂王)에 의하여 멸망하게 된다.

무을은 참람하기가 이를 데 없는 침주(侵主)며 망주(亡主)였고, 기군(寄君)이었다.
그의 행적은 기이하기조차 했다. 주변의 소국들을 모두 굴복시킨 그는 인간들 가운데는 자신과 맞먹을 대상이 아무도 없다는 자만에 빠져 급기야 신(神)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나무를 깎아 사람의 형체를 만들고는 이것들을 ‘천신(天神)’이라 불렀다. 그리고는 그 인형과 어울려 도박을 벌였다.

이를테면 공 던지기 놀이 같은 것을 하는데, 옆에 신하들을 세워놓고 심판을 보게 하였다. 왕이 한번 던지고 신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이 한번 던지게 하는 식이었다.

무을은 이 놀이에서 자신이 이기면 신을 비웃었다.

말로 비웃을 뿐 아니라 신이 질 때마다 욕하고 심지어 때리기도 하였다. 비록 나무 인형에 불과한 것이지만 감히 천신을 비웃고 모욕하는 행위였으므로 보는 사람들마다 속으로 왕을 욕하며 두려워했다.

무을은 곧 새로운 놀이를 발명(?)하였다. 가죽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짐승의 피를 담게 한 뒤, 이것을 높은 나뭇가지 위에 매달아놓고 활을 쏘는 놀이였다.

화살이 포대에 맞아 피가 터져나오면 무을은 “내가 하늘의 신을 맞춰 신이 피를 흘리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이 놀이를, 하늘을 쏜다는 의미로 ‘사천(射天)’이라 불렀다. 땅을 지배하고 하늘까지 이겼으니 자신이 천하제일이 되었다고 우쭐거렸다. 어느날 무을은 사냥을 위해 꽤 먼 거리를 나아갔다.

황하와 위수 사이에서 사냥을 즐기던 중 갑자기 엄청난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 무을은 천둥소리에 놀라 떨다가 죽었다.

세상 사람들은 무을이 신을 농락하다가 끝내 천벌을 받아 죽었다고들 했다.

그로부터 34년 뒤에 무을의 증손자인 신(辛)이 왕위에 올랐다. 그 사이 나라는 회복이 어려울 만큼 기울고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망한 것은 신에 의해서다.

음란한 짓을 일삼은 왕 조갑제로부터 100년이요, 천벌을 받은 무을제로부터 60년 뒤의 일이다. 황음무도한 은나라의 마지막 왕 신(辛)은 후일 주왕(紂王)이라 불렸다.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과 더불어 황음무도한 망국군주의 역사적 대명사가 된 걸주(桀紂)가운데 주(紂)가 바로 그다.

- 이야기 Plus
화살로 하늘을 쏘았다(사천=射天)는 말은 은나라 무을제에서 비롯되지만, 이후로도 유사한 놀이를 즐기는 황당한 군주들이 적지 않았다. 혹은 뒤에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오만한 군주를 일컫는데도 무을제의 ‘사천’이라는 말이 종종 대명사처럼 쓰였다.

후대에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있던 송(宋)이란 나라의 강왕(康王)이 바로 그런 군주였다. 그는 형인 척성(剔成) 임금을 힘으로 내쫓고 왕위에 올랐다.

선대의 군주들이 공(公)으로 불렸지만, 그는 스스로 왕(王)을 자칭했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오만이었다. 그리고는 무을제가 창안한 사천놀이를 답습했다.

나무위에 매단 피 주머니를 활로 쏘며 사천이라 했을 뿐 아니라 주머니가 터져 피가 튈 때마다 신하들로 하여금 ‘우리 임금이 하늘의 신을 이겼다’고 찬양하게 만들었다.

또는 땅에 매질을 하여 지신을 벌준다 하고, 사직의 신주를 베어 불사르기도 했다. 여기서 사천태지(射天笞地)라는 말이 생겼다. ‘하늘을 쏘고 땅을 매질한다’는 의미다. 천신과 지신을 동시에 모독하는 것이니 이보다 오만할 수가 없다.

강왕은 또 숭배 받는 것을 좋아해서, 그가 조정에 나타날 때마다 대신들이 펄쩍 뛰어오르면서 ‘만세, 만세’를 외치도록 했다. 대신들의 만세 소리가 들리면 어전 밖에 있는 관원들과 궁궐 밖의 백성들도 따라 외치며 절해야 했다.

이 관습은 대륙의 마지막 왕국 청조(淸朝)가 끝날 때까지 2천년동안 천자에 대한 예법처럼 이어지게 된다.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하늘과 땅의 신까지 욕보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사람이 평화롭게 죽는 일은 없다.

본래 강왕은 싸움을 잘하여 동으로는 제나라를 꺾고 남으로는 초나라를 누르고, 서쪽으로는 위나라 군대를 이겨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곧 주색을 탐닉하며, 귀에 거슬리는 말 하는 충신을 그 자리에서 활로 쏘아죽이며, 하늘과 땅을 모독하니 세상은 그를 선대(先代)의 폭군들인 걸주(桀紂)에 비교했다.

결국 제, 초, 위가 합세하여 공격하니 그로써 송 왕조는 강왕의 피살과 함께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성인의 덕목이다.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지도자는 자신을 망칠 뿐 아니라 그가 이끄는 나라나 조직까지 망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이 엄정하다.

정명(丁明) 시인 상임논설위원
peacepress@daum.net

저작권자 © 보험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