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국 하(夏)의 운은 마침내 바닥에 닿았다. 민심은 이반되고 제후들은 공공연히 왕 앞에 나타나기를 꺼렸다. 그 이유는 왕 자신에게 있었지만 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 보다는 순종하지 않는 제후나 백성들을 원망할 뿐이었다. 자연히 쓴소리를 싫어하고 충신을 의심하며, 술과 쾌락을 탐하니 충신은 사라지고 여자를 바치는 간신들만 늘어났다.

걸(桀)임금의 재위 기간은 무려 52년이나 되는 것으로 전해온다. 왕이 된 직후 걸은 자신만만한 군주였다. 굴복하지 않는 인근 부족들을 공격하여 정복을 즐겼다. 많은 정복전쟁을 통하여 자신감이 충만해진 걸은 점차 오만해졌고, 오만은 방만으로 이어졌다. 함부로 백성들을 해치고 주색에 빠져 황음무도했으므로 민심의 이반은 극한에 이르렀다.

언젠가 유시(有施)라는 부족을 공격하여 약탈하였는데, 여자들이 예쁘기로 소문난 부족이었다. 걸은 거기서 천하절색의 미녀를 손에 넣게 된다. 이름은 매희(妹喜) 또는 말희(末喜)로 알려져 있다. 유시 사람들이 진상하였는지 힘으로 잡아왔는지 모르지만, 이 미녀는 기꺼이 걸의 애첩이 되어 광란의 주연을 부추기게 된다. 유시 사람들이 하(夏)를 망하게 할 목적으로 미인계를 쓴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말희의 유혹은 적극적이었다. 과연 그녀에게 사로잡힌 걸의 사치향락은 국력을 쇠퇴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지나쳤다. 야사에 따르면, 그들은 예쁜 여자 3천명을 뽑아 궁녀로 삼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색색의 옷을 만들어 입혔다. 이를 위해 전국에서 여자와 옷감과 옷 만드는 사람들이 징발되니 지방에서 일손이 부족해질 정도였다. 왕은 전쟁조차 멀리하고 오직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 빠졌고 정사는 간신들의 뜻대로 굴러가게 되었다. 왕에게 나랏일을 간하다가 매 맞고 갇히고 처형되는 신하들이 부지기수였다. 점차로 신하들은 입을 다물고 왕을 피하게 되었다.

관용봉(關龍逢)이라는 충신이 있어서 왕에게 충심으로 걱정을 전하니 왕은 그를 죽여버렸다. 그 때 제후인 탕왕도 걸에게 불려가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걸왕에게 매 맞은 충신들을 위로한 것이 화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탕에 대한 세간의 신망이 두터웠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집중적인 노력으로, 탕은 걸에게 사죄하는 조건으로 곧 사면되었다.

걸의 폭정 아래서는 누구 하나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설사 걸에게 아부를 한다 해도 어느 순간 작은 실수 하나로 목이 잘릴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전국의 제후들이 탕에게로 와서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탕은 신중히 기회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에 곤오(昆吾)씨라 하는 제후가 먼저 반란을 일으켰다. 마침 걸왕은 탕에게 진압을 명하였다. 탕이 군대를 소집하니 인근의 많은 제후들이 호응하여 몰려왔다. 여러 제후들의 연합군 거느리고 곤오씨를 제압한 탕은 곧바로 걸왕을 치러 나섰다. 그것은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군사를 일으킬 때는 반드시 출병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 군대를 이끄는 탕이 그것을 문서로 명확히 공표했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감히 난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 왕조가 많은 죄를 지었으므로 상제의 뜻이 두려워 정벌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 나라가 죄를 많이 저질러 하늘이 그를 벌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중략) 혹 ‘하왕(夏王)이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왕은 백성들의 힘을 소진시키고 나라의 재물을 약탈하여 백성들이 나태해지고 서로 불화하게 만들었다. 결국 ‘저 태양은 언제나 지려는고. 나 차라리 너와 함께 사라지고 싶다(是日何時喪 予與女皆亡)’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 왕조의 덕이 이와 같으니, 정벌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늘의 징벌을 대신하도록 도와준다면 큰 상을 내릴 것이요, 만일 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書經 湯誓)

연합군이 진격하자 걸은 명조라는 곳으로 달아났고, 하의 군대는 싸울 의지도 없이 흩어졌다. 달아난 걸왕은 자신의 부덕을 후회하기는커녕 탕을 가두었을 때 죽여 없애지 않은 탓으로 망하게 된 것이라고 후회할 뿐이었다. 걸은 매희와 함께 잡혀 죽었고, 걸의 마지막 보루인 제후국 삼종이 무너지자 하는 멸망하였다. 탕왕, 즉 성탕(成湯)은 스스로 무용(武勇)이 뛰어나다고 하였으므로, 이후 그를 무왕(武王)이라 칭하게 되었다. ★ (丁明)

- 이야기 Plus
황음무도한 패역군주의 대명사로 걸주(桀紂)라는 말이 쓰인다. 하를 망하게 한 걸왕과 뒤에 은나라를 망하게 한 주(紂)왕을 더불어 일컫는 말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본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왕이었다는 점, 그러나 오만하여 독단을 일삼았다는 점, 드디어는 사치향락과 주색에 빠져 국사를 외면하였다는 점, 충신들의 간언(諫言)을 멸시하고 아첨배들을 사랑하여 국정질서를 혼란케 하였다는 점, 마침내 충신들을 죽여 곁에서 진실을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고 내부에 원망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점, 측근들까지 의심하게 되어 포악한 행동이 점증하였다는 점 등이다. 설사 밖에 머물며 근신하는 제후라 할지라도 왕이 간신의 모함하는 말만 듣고 벌을 내리면 언제라도 달려가 벌을 받아야 하니, 아무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제후들은 그 왕을 물리쳐 없애지 않고서야 두발 뻗고 편한 잠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제후들로 하여금 반기를 들게 만든 것은 결국 아무도 자기를 믿지 못하게 만든 폭군 자신이랄 수밖에 없다.

<관자>(管子)에 “자기 죄를 아는 자에게 백성은 죄를 묻지 않고, 자기 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 백성은 죄를 묻는다(善罪身者, 民不罪也 不能罪身者, 民罪之)”는 말이 있다. 심판을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천벌을 받아도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할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정명(丁明) 시인 상임논설위원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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