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이 다하고 왕들이 덕을 잃은 다음에는 민심의 동요와 왕실을 향한 배반이 잇따르게 된다. 흔들리는 민심은 또 누군가 새로이 의지할 대상을 찾게 마련이다. 사이비 종교가 흥행하거나 알량한 힘을 가진 군소 권력자들 주변에 반역의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거나 실제로 반란이 자주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쇠퇴하는 나라의 군주는 백성과 신하들을 의심하며 두려워하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군주는 더욱 덕치(德治)와 선정(善政)을 베풀어 민심을 얻도록 노력해야 나라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데, 어리석거나 오만한 군주는 오히려 강압과 공포정치로 그 두려움을 거스르려 하므로 멸망을 재촉하는 것이다. 

공갑 임금 이후의 하(夏) 나라가 그랬다. 공갑의 손자 이계(履癸), 즉 걸(桀)에게로 와서는 음란하고 문란하고 잔인한 공포정치가 극에 이르러 망국의 징조가 완연했다.
그러자 세상의 민심은 한 후덕한 제후에게로 향했다. 일찍이 순(舜) 임금 때에 공을 세우고 봉토를 받은 설(契)이란 성인이 있었다. 그가 받은 봉토는 지금 하남성 인근인 상(商)에 있었고, 그 나라(제후국)의 이름은 은(殷)이었다. 걸(桀)왕 시기에 은의 제후는 설의 14대손인 탕, 즉 성탕(成湯)이었다. 그의 덕망이 높아서, 전국의 제후들과 백성들의 민심은 패역한 왕조를 떠나 탕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어느날 탕이 교외로 나갔다가 어떤 사람들이 강에서 고기 잡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물을 치면서 “천하의 모든 것이 다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소서”라고 노래를 불렀다. 탕이 이 소리를 듣고 말했다. “어허, 한꺼번에 다 잡아 없앨 셈인가!” 그리고는 새 노래를 가르쳐주었다. “왼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왼쪽으로 가거라. 오른쪽으로 가고 싶은 것은 오른쪽으로 가거라. 어느 쪽도 따르고 싶지 않은 것들만 내 그물로 들어오거라.”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제후들이 모두 감탄하여 말했다. “탕의 덕이 지극하여 금수(禽獸)에까지 이르렀구나.” 

성탕의 명성이 널리 퍼지자 그를 흠모하는 재인(才人)들이 전국으로부터 몰려들고 당대의 현인들이 모두 그를 주목하였다. 성탕은 이들 가운데 이윤(伊尹)이라는 인물을 특히 중하게 등용하여 재상으로 삼았다.
탕은 덕을 잃은 제후들을 정벌하는 일도 하였는데, 갈(葛)의 수령 갈백(葛伯)이 도를 잃었을 때 출정하여 벌을 준 후에 이렇게 말했다.

“맑은 물을 바라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백성들을 살펴보면 그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人視水見形 視民知治不).”
이윤이 공감하며 화답했다.
“현명하신 말씀입니다. 남의 훌륭한 말을 귀담아 듣고 따른다면 도덕이 발전할 것입니다. 군주가 백성을 자식처럼 여긴다면 훌륭한 인물들은 모두 왕궁으로 몰려들 것입니다(君國子民 為善者皆在王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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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은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잡는 데 뜻을 두고 그릇이 큰 군주를 찾아 경륜을 펴고자 했는데, 일찍이 천자 걸에게 찾아간 바 있으나 그의 악정(惡政)이 한계에 이른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성탕은 이윤과 더불어 왕도를 논했고 민심의 이치를 논했다.
“세상에는 아홉 종류의 군주가 있습니다. 첫째는 법군(法君)이니, 엄격히 법으로 다스리는 군주입니다. 둘째는 노군(勞君)이며, 스스로 부지런히 일하는 군주입니다. 셋째는 등군(等君)이니,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며 상과 벌을 공정하게 하는 군주입니다. 넷째는 전군(專君)입니다. 현명한 신하를 얻어 일을 맡기기보다는 자기 독단으로 행하기를 좋아하는 독재 군주입니다. 다섯째는 수군(授君)이니 자기 스스로 이치를 따라 다스리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모든 일을 맡겨두는 무능한 군주입니다. 여섯째는 파군(破君)이며, 적을 얕보고 도둑을 끌어들여 마침내는 나라를 잃고 죽임을 당하는 망국의 군주입니다. 일곱째는 기군(寄君)입니다. 백성들을 고생시키고 그 위에 교만하게 군림하므로 나라를 쇠망으로 이끄는 군주입니다. 여덟째는 고군(固君=國君)입니다. 오직 성을 쌓아올리고 수비군을 늘려 굳게 지킬 뿐 백성에게 덕을 쌓거나 베풀 줄을 모르니 백성은 고단합니다. 아홉째는 삼세사군(三歲社君)이라 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강보에 싸여 사직의 주인이 된 경우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좋은 임금을 만나 경륜을 펴고자 하고 이윤과 훌륭한 인재를 구해 천하를 얻고자 하는 탕왕의 만남은 필연적이고도 역사적이다. 이윤은 탕임금의 그릇이 천하를 담을만한 것을 알았고, 탕임금 또한 이윤이 천하를 경영할 인재임을 알아보았다. 이 만남으로 인해 피로하고 지친 한 시대가 마감되고, 하늘과 백성 앞에 선정(善政)을 다짐하는 새 시대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윤이 탕왕을 만나 설파한 구주지사(九主之事) 가운데 어떤 군주가 세상을 안정시키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군주인지는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흔한 가장(家長)이나 사장(社長), 지휘관 가운데도 독단으로 행하는 전제군주형(專制君主型)이 있을 수 있고, 등군형, 노군형도 있을 수 있으며, 능력이 부족하여 아랫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수군형 리더나, 마침내 한 가문이나 사업을 파탄내는 파군형의 리더도 있을 수 있다. 기저귀도 떼기 전에 수십억 부동산과 수백억 주식을 물려받는 삼세사군형 리더도 있다. 나라나 기업을 평안케 하고 진전시킬 리더와 오히려 망가뜨릴 리더를 판단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정명(丁明) 시인 상임논설위원
peac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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