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독한 아버지를 효도로 감화시키다

能和以孝 능화이효
(악독하고 방자한 가족들에게) 효성을 다해 화목하게 지내다 (五帝本紀)
순임금이 무도하고 악독하며 방자한 부모와 동생을 효성으로 감화시킴.

사람들은 흔히 요순시대(堯舜時代)가 이상적인 성군의 시대며, 백성들이 아무런 고통 없이 오직 행복하게 지낸 태평성대였다고 여긴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넘게 지난 고대의 일이기 때문에, 과연 완벽하게 깨끗하고 행복한 시대였을까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그런 태평성대는 전설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요나 순임금은 그들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인(神人)이 아닐 뿐더러, 요즘이나 다름없이 시기 질투가 난무하는 인간세계 속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가며 인간적인 모범을 보였고, 존경을 얻었다. 종교적 환상이나 초자연적 능력에 의존해 나라를 다스린 게 아니라 철저히 과학적 합리적인 지혜와 인고의 노력으로 이상사회를 일궈냈다.
순(舜)이 요(堯) 임금에게 천거된 것은, 그가 어진 인물일 뿐 아니라 엄청난 고생 가운데서도 자기 부모를 모시는 효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고수(瞽叟)는 맹인이었는데, 아내가 죽자 두 번째 아내를 얻어 아들 상(象)을 얻었다. 상(象)은 오만하였고 계모는 상을 편애하여 기회만 되면 순을 괴롭히며 심지어 기회를 봐서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순은 아버지와 계모를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였으며, 부모가 찾으면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동생에게도 잘 대해주고, 독실하고 성실하여 조금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요임금이 순이 어떤 사람인가 물었을 때 중신들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장님의 아들입니다. 아비는 도덕이란 모르는 자이고, 어미는 남을 잘 헐뜯는 자이며, 동생은 교만합니다. 그러나 순은 효성을 다하여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그들을 점점 착해져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父頑,母嚚,弟傲,能和以孝,烝烝治,不至姦).”
계모와 동생이 순을 죽이려고 한 일은 구체적으로 두 번의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하루는 아버지 고수가 순에게 창고에 올라가 벽토를 바르게 하였다. 순이 올라가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래서 불을 질러 창고를 태워버렸다. 이때 순은 두개의 삿갓을 보호구로 삼아 뛰어내려 화를 면했다. 그 뒤에 고수는 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다. 순은 항시 신변의 위험에 대비했던 것 같다. 우물을 파면서 한쪽에 비밀 공간을 마련해두었다. 순이 깊이 파들어 갔을 때 갑자기 위에서 고수와 상이 함께 흙을 퍼부어 우물을 메워버렸다. 고수와 상은 이제 순이 죽었을 거라며 기뻐하였다. 그들은 왜 순을 죽이려 했을까. 순이 부지런하여 모아놓은 재산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순의 재산을 나누는 일이었다. 상이 말했다. “이 계책은 본래 제가 생각한 것입니다. 이제 순의 아내인 요(堯)의 두 딸과 거문고는 제가 갖고, 소와 양, 창고는 부모님이 가지세요.”라고 하였다.
순이 비밀공간으로 몸을 피한 후 흙을 거꾸로 파면서 올라오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겨우 땅속에서부터 벗어나 집으로 돌아와 보니 상이 자신의 방을 차지하고 앉아 거문고를 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순을 발견한 상은 당황하여 겸연쩍어하면서도 역시 영리하게 변명하였다. “마침 형 생각이 나서 가슴 아파하고 있었어.” 그 말을 듣고 순은 그저 “네가 형을 그처럼 생각하고 있었구나”하며 받아들였고, 이후에도 더욱 정중하게 아버지 고수를 섬기고 동생을 아껴주었다. 순은 후일 제위에 올랐을 때 천자(天子)의 깃발을 꼽고 부친에게 인사드리러 갔는데, 그 태도가 여전히 공손하여 자식의 도리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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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까지 선량할 수 있는가. ‘아비가 아비답지 않더라도 자식은 도리를 다하라’는 말이 있다지만, 순이야 말로 자기를 두 번이나 죽이려고까지 하는 아버지를 지극하게 섬겼다. 죽이려고 할 정도였다면 어린 시절 박대는 또 얼마나 하였을까. 거역하기 어려우면 일찌감치 도망이라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자칫하면 아버지를 살인자로 만들 뻔했다. 그런데 도망도 아니 가고 저항하지도 않으면서 순은 대책 없이 사악한 아버지와 계모와 이복동생을 가족으로 섬긴다.
착하려면 이처럼 끝까지 착해야 하는가 보다. ‘아비는 무도한 자이고, 어미는 험담을 잘하며, 동생이란 자는 건방진데, 순은 효성으로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그들을 점점 착해져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평가가 묵직하다.
바보스러울 만큼 착한 것으로 보면 좀 단순하고 우매한 성품일 것 같으나, 순은 그렇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현명하고 본받을 게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를 천거하여 천자의 후계가 되게 하지 않았겠는가. 요임금 또한 여러 방법으로 그를 시험해 본 뒤에 서슴없이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오늘날 공직자나 회사원을 뽑는 데에는 ‘인성(人性)’에 대한 평가가 거의 사라졌다. 그저 법전(法典)을 달달 외우면 사법관이 되고, 행정(行政)을 줄줄 외우면 공무원이 된다. 학점으로 평가하여 교사를 세우고 수완이 좋으면 정치가가 된다. 피의자와 간통하는 간(肝) 큰 검사나 공공 조달을 미끼로 뒷돈을 받아 챙기는 부패공무원이 괜히 생기겠는가. ‘인간’은 사라지고 기능만 앞서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 되기는 요원할 것이다.

丁 明 (시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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