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구체적 조건·합의 없다면 청약 유도일 뿐"

[보험매일=이정애 기자] 보험을 팔면서 '휴양시설 입주 우선권 제공'이라는 내용의 광고를 했더라도 구체적인 조건이 없었다면 이는 단순한 혜택 선전이나 청약 유도 장치일 뿐 계약 내용 자체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민모(59)씨 등 5명이 "옛 체신부가 연금보험 계약을 체결하면 노인 거주시설 입주 우선권을 준다고 홍보했는데 이후 시설을 짓지 않아 손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체신부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했다. 당시 체신부는 홍보 안내문이나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보험에 가입하면 장차 건립할 노인 거주시설인 '노후생활의 집'에 입주할 우선권을 준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체신부는 1988년께 '기금 재정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시설 건립을 보류하고서 결국 계획을 폐기했다.

재판부는 "홍보 안내문이나 신문 광고는 청약의 유인(유도하는 것)으로서의 성질을 갖는 데 불과하고, 구체적 거래조건이 포함돼 있거나 계약 당사자 사이에 묵시적으로라도 광고 내용을 계약 내용으로 하는 합의가 없었다면 그 광고 내용이 보험 계약에 포함됐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약관이나 계약청약서에는 시설 관련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고, 계약 시 이용 자격·기간 등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한 바 없다. 또 광고의 주된 내용은 연금 지급이고 안내문만으로 입주권이 보장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정책 무산을 계약 불이행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입주권 부여가 보험 계약의 부수적인 내용으로 포함됐다고 판단해 채무 불이행 책임을 인정했는바, 이는 광고의 계약 내용 편입 요건이나 계약 해석의 법리를 오해했다"고 지적했다.

1심은 "시설 입주는 보험 계약에 따른 권리가 아니라 단순한 혜택에 불과하고, 설령 우선권 부여가 계약 내용에 편입됐다고 해도 원고들이 손해를 입었다는 입증이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입주권 부여는 계약의 부수적인 내용"이라며 국가가 원고 1명당 3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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