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자의 조건

 二年成邑,三年成都 이년성읍 삼년성도
2년이면 읍이 되고, 3년이면 도시가 되다
덕망이 높은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레 성시를 이룸

옛날에 제우스신이 새들의 왕을 지명한 적이 있었다. 새들이 자기들 중에서 왕을 뽑아달라고 간청하기도 했지만, 사실인즉, 제우스신은 새들을 직접 다스리는 일도 이제 지겨웠던 것이다.

제우스는 산과 들에 사는 모든 새들에게 숲속 광장으로 모이도록 통보하고 가장 모습이 아름다운 새를 왕으로 뽑겠노라 선포하였다. 그러자 새들은 당장 호숫가로 달려가서 세수를 하고, 깃털과 몸통을 꼼꼼히 가다듬고, 정성들여 치장을 한 후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평소 외모에 자신 있는 새일수록 더욱 정성을 들였으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시커먼 까마귀는 애시당초 응모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심사시간. 제우스는 모여선 새들의 모습을 둘러보다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화려한 모습의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 오묘한 새는 체격이 딱 중간 정도로 적당한데다 화사한 홍학의 날개깃털과 화려한 원앙이의 가슴깃털을 갖췄고, 머리에는 우아한 후투티의 깃털까지 달렸다. 게다가 꼬리는 환상적인 공작새의 그것을 빼다 박은 듯 아름답지 않은가.

제우스는 이 처음 보는 새를 왕으로 선포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잠깐이었다. 새들이 서로 돌아다보며 수군대기 시작하더니 한 마리씩 앞으로 걸어 나와 낯익은 자신의 깃털을 뽑아갔다. 각자 자기 깃털을 다 뽑아가자, 남은 것은 검고 볼품없는 까마귀뿐이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얘기다.

까마귀가 당한 망신은, 가엾긴 하지만 자업자득이다. 아름답지 못하다면 왕이 되려고 하지나 말고 겸손하기나 해야 하는데, 남의 것으로 눈속임하여 왕이 되려 하다니. 그의 까만 외모보다도 더 초라한 것은 남을 속여 왕이 되려한 시커먼 양심이었다.

남의 말이나 생각이나 외관을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양 꾸며 이익을 보려는 못난 까마귀는 인간 세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선거철이면 언제나 나서서 한 자리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철학 없이 오로지 그럴싸한 말들을 주워 모아 유권자를 현혹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은 행여 유권자의 눈을 용케 속여 당선된다 해도 국민을 위하기는커녕 제 뱃속 채우기에 급급하다.

요순시대라 하면 가장 어진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천하가 태평성대를 누리던, 선사시대 중국의 한 시기를 일컫는다. 세상이 창조된 에덴동산 직후 지상에 등장한 낙원이었을 것이다.

백성을 평안케 했던 요임금도 나이가 들어 후계자를 세울 때가 되자 고심이 많았다. 중신들이 여러 명망가들을 추천했으나 심중을 꿰뚫어보는 요임금의 눈에는 양에 차지 않았다.

당시 기산이라는 곳에 숨어사는 허유(許由)와 소부(巢父)라는 사람들이 성인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갔으나 그들은 냉정히 왕위를 거절했다. 허유는 정치하라는 말을 들으니 귀가 더럽혀졌다며 냇가로 가서 귀를 씻었고, 이것을 본 소부는 물이 더러워져 먹일 수가 없다며 소를 끌고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이는 후에 기산지절(箕山之節)이라 하여 명리를 초개같이 여기는 은자들의 지조를 상징하는 고사가 됐다.

그러나 누군가는 왕이 돼야 한다. 인간 사회는 질서가 필요하고, 그 질서가 잘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감독자든 관리자든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조백관의 추천을 받은 인물 가운데 우순(虞舜)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임금은 한 눈에 그의 인간됨을 알아보았지만, 능력과 인품을 더 잘 알아보기 위해 먼저 자기 딸 둘을 순에게 시집보냈다. 순은 왕의 사위가 되고도 그 덕을 보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주들의 지위를 자신과 같이 낮추어 고향에 같이 살면서 농부로서의 근본을 지켰다. 지아비로서, 아비로서의 도리가 뚜렷하였고, 부모형제에 대한 효성과 우의 또한 반듯하였다. 요임금이 아홉 명의 아들을 보내 배우게 했더니 아들들이 모두 성실해졌다. 요임금은 대단히 흡족하여 순을 만난 지 5년 만에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순이 겸손히 사양하므로, 왕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순에게 정치를 대행하게 하였다. 그 후 20년이 지나서야 순을 하늘에 추천하고 물러섰다. 그런데도 순은 그로부터 8년이 더 지나 임금이 붕어한 뒤에야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순(舜) 임금이다.
순은 아직 평민일 때 역산에서 농사를 지었다.

그러자 역산의 주민들은 모두 서로서로 밭의 경계를 양보하여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이라면 이웃 간에 밭고랑 논두렁을 두고 다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다툼이 사라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을이 되었다는 뜻이다. 순이 뇌택이란 곳으로 옮겨 고기잡이를 할 때에는 그곳 사람들이 서로 장소를 양보하며 고기를 잡았고, 하반으로 가서 그릇을 굽자 하반에서 나는 그릇은 불량품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 살기를 좋아하므로, 순이 사는 곳은 1년이면 마을이 형성되었고, 2년이면 읍이 되었으며, 3년이 지나면 도시가 이루어졌다(一年而所居成聚,二年成邑,三年成都).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주(周)왕실을 세운 문왕(文王)의 선조 가운데 나라의 기틀을 다진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전설 가운데도 같은 이야기가 있다. 다음에 소개하기로 한다.

리더십 가운데 스스로 이벤트를 꾸미고 내세워 사람을 끌어 모으는 인위적 리더십은 그 덕(德)이 그리 크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 그 덕망을 알아보고 추앙하여 자연스럽게 모여들며, 그 가운데 새로운 질서가 생겨난다면 최상의 지도력이라 할 것이다. 요즘 말로 부드러운 리더십, 스마트 리더십이라 하는 게 이 같은 리더십 아닐까.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흔히 동경하여 말해온 ‘요순시대’란 이러한 ‘덕망의 리더십’에 의해 조성되고 발전한 사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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