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후

편집국장

보험연구원이 보험설계사의 근로자 인정범위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에 고민하고 있다. 보험업계가 보험연구원에 “설계사를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라”는 연구용역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말이 의뢰지 임무를 ‘부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당장 보험연구원은 보험사의 입맛에 맞는 또 다른 논리로 보험사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어야함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전혀 새로워 보이지 않은 이번 논쟁은 지난 여름 심상정 의원을 대표로 발의된 ‘노조법, 산재보험법, 보험료징수법’ 개정안이 발단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현행법의 근로자 정의를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업무상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산재보험 가입범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여기에는 레미콘 기사나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택배 기사와 함께 보험설계사가 해당된다. 산재보험 가입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법 적용 당사자인 보험설계사에게 부여함으로써 이들의 합리적 선택권을 보장해야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보험업계는 당연히 반발하고 나섰다. 반박 논리는 그동안 수도 없이 써먹었던 △보험설계사의 직업적 특수성과 △법안 통과 시 사업비 증가로 인한 보험료 인상 △이로 인한 여성 일자리 감소 등이다. 법 개정으로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예상돼 이 법률안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보험업계는 관련법 개정 조짐이 있을 때마다 이 같은 논리로 대응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식상해 진 모양이다. 좀 더 새로운 논리로 쐐기를 박을 ‘그 무엇’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험업계는 일단 생손보 양 협회 차원에서 보험설계사가 근로자 인정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는 건의서를 각각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한편으로, 그동안 제시되지 않았던 새로운 논리를 보험연구원을 통해 모색토록 했다. 이번에 보험업계가 의뢰한 ‘설계사의 근로자 인정에 관한 연구’ 용역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용역을 받아든 보험연구원은 한 마디로 “고민 중”이라는 말로 속내를 드러냈다. 그들의 고민은 대체로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동안 수도 없이 ‘연구’했고 ‘주장’해 왔기 때문에 더 나올 게 과연 있을까, 라는 것. 속된말로 ‘우려먹을 만큼 우려먹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는 조금 다르다. 보험업계의 입장이 과연 정답인지 확신이 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머리를 쥐어 짜 어떻게 해서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후자의 경우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보험산업 발전이라는 장기적 안목에서 보험사들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인 것이다. 설계사들 역시 보험산업을 끌고 가는 수레바퀴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는 고민이라기보다는 그저 푸념에 가깝다는, 현실적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내년 예산편성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는 걱정도 이번 고민에 함께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회원사를 대변하는 연구기관이 당연히 그들이 제시하는 연구 과제를 그들 입맛에 맞추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려고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 보험연구원이라는 기관을 운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 결과 역시 불을 보듯 뻔한 결론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보험연구원은 보다 큰 그림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보험산업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그리고 작게는 보험연구원이 스스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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