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한 후배 A군이 얼마 전 지리산으로 떠났다. 여행을 간 게 아니고 아예 보따리 싸서 내려갔다. 준수한 외모에 준수한 대학을 나왔고, 준수한 직장을 다니던 그가 어느 날 직장을 때려 치더니 준수한 표정으로 지리산 길에 올랐던 것이다.

포목점집 아들로 태어난 A군은 어려서부터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탓에 거칠 것 없어 보였지만, 그에게도 약간의 단점은 있었다. 굳이 단점이라고 말하니 단점이 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그것 역시 준수한 단점이었다.
 
성질이 급했다. 여러 명이 걸어갈 때는 물론이고 단둘이 걷고 있을 때도 그는 서너 걸음 앞서 걸으며 빨리 오라고 손짓하기 일쑤였다. 줄기세포 탓이려니, 웃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성정 때문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에게는 약간의 말더듬이가 있었다.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하고 싶은 말을 몇 초 정도 목구멍에 눌러놨다가 갑자기 퇴퇴, 말을 뱉어내는 버릇이 있었다. 그도 그것을 아는지, 말이 잘 되지 않은 순간에는 손짓, 발짓, 거기에 얼굴 표정까지 보태 의사를 전달하곤 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법도 한데 그것 역시 그의 준수한 외모와 입담에 희석돼 다들 즐거워했다.
 
어렸을 때 심하게 말을 더듬는 친구가 있었다. 그 아이는 준수한 A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한 번은 그 아이가 다른 친구하고 말다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니가 나 해봐?(나 이길 수 있어?)”
“……”
“빙신!”
“……”
“말도 못한 새끼가 ㅋㅋ”
그 말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는 격이었다. 아이의 반격이 시작됐다.
“이, 이 시, XX 노, 놈아. 니가 칼로 다람쥐에 올라가게 숙제하는 빙신같이 오살. 선생님이 솔가지 오냐 했다. 우리 아버지 배 지붕으로 커져. @^#*?~!@.}•*?!@.@^#*?(7~)!@%$%^&**((&^%$$$&@”
아이는 그 상황에서 떠오르는 모든 단어를 램덤하게 쏟아 부으며 악을 썼다. 그렇게 '말'을 할 때 아이의 말더듬 현상은 감촉같이 사라졌다. 아마도 그 ‘말’들은 뇌에서 정제돼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과 귀가 판단하고, 곧바로 입을 통해 튀어나온 무조합의 언어였다. 결과는 아이의 티케이오 승. 상대방이 웃음 참지 못해 전의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준수한 A군은 가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군대 갔을 때 사방을 에워싼 검푸른 초목이나 찢어질 듯 시퍼런 하늘, 누런 흙 길, 밤하늘 총총한 별들이 그렇게 낯설어 보일 수가 없더라고. 도시에서만 자라고, 그래서 회백색 건물과 시커먼 아스팔트로 회칠한 길만이 익숙한 준수한 A군에게는 어쩌면 그리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지리산으로 갔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고추 수확을 했는데 한 상자 보내겠노라고. 말을 더듬으며 흥분하는 전화기 저 편으로 손짓, 발짓에 표정까지 일그러뜨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수확의 계절, 가을인가 보다.
 
이민후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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