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 도심 한복판의 광화문 네거리. 언제부터인가 이곳에 다정다감한 시구(詩句)로 거리의 표정을 밝게 만드는 것이 있다. 교보생명빌딩 전면에 걸린 대형 글귀간판이다. 이달부터는 정호승(鄭昊昇)시인의 시구가 대형 간판위에 확대되어 옮겨져 있다. "도심 시민의 청량제" 역할을 하며 벌써 13년째 광화문거리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첫 선을 보인 것은 91년1월. 글귀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였다. 처음에는 사회상에 맞는 구호성 문구가 대종을 이뤘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맞은 98년1월에는 시대상이 반영됐다.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다"는 문구였다. 세파(?)따라 글귀도 의미를 달리한 것. 최근에는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문구가 등장하고 있다. ▷교보생명빌딩은 자본의 힘이 정치적 논리를 이기기 시작할 즈음 들어선 초대형 민간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때가 지난 80년이다. 일본 도쿄의 미국대사관을 설계한 미국인 설계사 시저 펠리가 설계했으나 동양의 건축물임을 감안, 둥근 기둥에 단청을 입혔었다. 정문 앞에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를 심어 보행자를 배려한 점도 시선을 끈다. 이곳은 교보빌딩의 정원이자 시민들의 작은 공원 역할을 한다. 이런 배려 때문인지 최근에 이어지는 촛불집회는 대부분 교보생명 빌딩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집회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셈이다. ▷지난 1999년에는 새 천년(뉴 밀레니엄) 행사 장소 탓에 종로통에 자리잡은 교보생명(종로1가 1번지)과 제일은행(공평동 100번지)의 희비가 엇갈렸다. 정부가 새천년맞이 자정행사 장소를 광화문 일대로 잡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신년맞이 행사는 제일은행 본점 건너편 보신각 주변에서 벌어졌는데 스포트라이트가 교보생명 빌딩으로 옮겨져 버린 것이다. ▷광화문의 "랜드마크" 교보생명 빌딩이 리모델링을 준비하고있다. 교보 본사를 제외한 9층부터 22층까지는 주한 외국대사관이나 외국회사들이 주로 쓰고있는데 건물이 오래되다보니 입주사들이 파이넨스빌딩 등 인근 새 빌딩으로 이사를 가버리는 모양이다. 지은지 25년이나 됐으니 이해가 간다. 이번 리모델링 작업으로 건물의 모습은 새로워지되 시민과 함께하는 생각은 옛것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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